The Last Mind

Captain's Log

Monthly Archives: August 2005

Pandora

31 August 2005 by Joseph Jang

Pandora는 사용자가 제시한 곡과 유사한 곡을 여러가지 기준 (melody, harmony, rhythm, instrumentation, orchestration, arrangement, lyrics)으로 찾아내주고 들려주는 서비스입니다. (via lunamoth)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것 중 하나는 ‘이제 무엇을 들을까’에 대한 의문를 해결해주는거죠. (다른 하나는 ‘이 곡을 다른 사람과 함께 듣고 싶어’란 욕구를 해결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용자가 명시한 장르안에서 그저 잘 팔리는 곡을 추천해주거나 임의로 추천해주는 방식이 국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최선이었죠. 기껏해야 커뮤너티를 조성해서, 사람이 사람에게 추천해줄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일 정도였을까요. Pandora는 이러한 문제를 멋지게 해결해주고 있네요.

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s라는 곡으로 ‘Station’을 만들면, 그와 유사한 곡을 차례대로 들려주는 방식입니다. 친절하게 왜 이곡이 비슷한가 하는 이유도 알려주고, 사용자의 만족도를 피드백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비슷한가를 평가하냐구요? 음악가들과 기술자들이 직접 곡들의 여러가지 특성들을 수집하고 모아놓는 프로젝트가 있었나봅니다. The Music Genome Project라나요.

Pandora Usage

좀 더 경험해보아야겠지만, 선택되는 곡에 대한 만족도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Pandora Usage

Pandora Usage

물론, 여러 Station을 만들어둘 수 있구요. 곡 뿐만이 아니라, Artist로도 Station을 만들 수 있습니다.

Pandora Usage

Pandora Usage

Flash로 만들어진 RIA라서 Firefox에서도 잘 동작합니다.

10시간 맛보기를 제공하고 있구요. Subscription fee는 1년에 $36, 3개월에 $12입니다. 우리나라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요금 비슷한 수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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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2년 6개월, 대통령에게 듣는다

28 August 2005 by Joseph Jang


참여정부 2년 6개월, 대통령에게 듣는다

지난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KBS의 ‘참여정부 2년 6개월, 대통령에게 듣는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그동안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다음 링크를 통해서 전문을 볼 수 있으며, VOD도 볼 수 있다. 정부의 정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정치적인 입장과 상관없이 반드시 한번쯤 봐둘 것을 권장한다.

"불신과 적대의 문화 극복해야"

국민 책임-대통령 무책임론

이에 대한 프레시안의 칼럼, 盧의 무책임한 ‘국민 책임-대통령 무책임론’은 노 대통령이 (특히,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국민의 책임으로 돌리고, 대통령의 책임을 피하려고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박태견 프레시안 논설주간의 이 칼럼은 노 대통령의 의도를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해석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노 대통령 발언은 정치학계에서 흔히 ‘통치 불능 지지율’로 표현하는 ’30% 미만 지지율’로 급락한 데 대해 대통령이 느끼고 있던 위기감이 얼마나 극심한가를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여러 차례 비공식적 라인을 통해 자신을 ‘식물대통령’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옆나라 일본에서 최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가 정치적 승부수를 던져 밑바닥을 기던 지지율을 극적으로 반전시킨 데 대한 부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노 대통령 발언은 그러나 보다 엄격히 말하면 국민에 대한 ‘도전장’이었다. 자신의 지지율이 왜 폭락했는지에 대한 ‘자성’을 하기보다는 ‘당신들이 그만 두라면 그만 둘 수도 있다’는 식으로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에 대한 ‘울분’을 토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지지도 하락에 의한 정책 수행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단지 ‘울분’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토론이 필요하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 수준의 국민적 지지도를 가지고 내가 국민들에게 약속하고 또한 소신으로서 이루고자 하는 국정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 다시 한번 우리가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문제를 놓고 과연 이 부분의 대답이 긍정적이지 않을 때, 책임정치의 원리에 맞지 않다거나 이대로 국정 수행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대통령 자리에 그냥 앉아서 2년 반의 계획을 계속 밝힌다, 앞으로 2년 반의 계획을 계속 밝힌다는 것을 과연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내가 대통령 자리에 연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해야 된다, 그것이 정직한 대통령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으로서,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국민들에게 이 문제를,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던질 거 뭐 있냐? 당신이 결단하라’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제도가 내각제가 아니어서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통해서 재신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국민적 지지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대통령직을 불쑥 내놓는 것이, 그 또한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어서 굉장히 고심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저는 우리 국민들과 정치권과 저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 학계, 언론계 다 함께 모여서 이 문제에 관해서 우리가 정면으로 한번 부닥쳐 보자. 우리가 29% 짜리 대통령과 함께 우리의 미래를 걱정해야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국민적 토론이 난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오늘 그런 얘기를 중심에 놓고 경제 얘기도 좋고 정치 얘기도 좋고 사회 문제 얘기도 좋고 하나하나 얘기를 한 번 해 나가자, 이런 말씀을 드리고요. 여하튼 구체적인 모든 문제에 대해서 저 나름대로 이런 큰 틀에서 말씀을 드리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태견 씨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나름대로 강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그동안 부동산 정책에 대해 불만이 많았나보다. 낮은 지지도에 대한 정책 수행의 어려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노 대통령의 의도를 노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과실을 들어 노 대통령의 무책임론으로 몰아가고있다.

노 대통령의 주장을 요약하면, 대통령 자신은 제대로 부동산 투기를 잡으려 했으나 자신만 빼고는 경제부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언론 등이 차 떼고 포 떼는 식으로 저항을 해 제대로 된 부동산정책을 펼 수 없었다는 ‘대통령 무책임론’에 다름 아니었다.

(중략)

노 대통령은 물론 1년여 뒤인 지난 6월24일 부동산값이 재폭등하며 비난 여론이 들끓자, "(지난해 그렇게 말했지만) 지나고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더라"며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못 할 것도 없다"고 말을 바꾸긴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6.9 발언’은 결정적으로 주택가격 안정을 갈망하던 다수 국민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발언이었고, 그 후 부동산값 폭등의 결정적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런 노 대통령이 ‘대통령 무책임론’을 펴니, 과연 노 대통령이 ‘대통령 책임제’라는 헌정질서 아래 대통령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얼마나 큰 책임을 지고 있는가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노 대통령은 시종일관 자신의 책임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으며 단지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을뿐이다. 그게 나쁜가? 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발언을 마무리하고 있다.

-제가 고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책임하게 행동할 생각은 없습니다. 뭔가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항상 책임 있게 행동하겠습니다.

-서두에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충격적인 말로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이와 같은 문제를 내놓고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들과 진지하게 우리가 얘기하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 다 속셈 숨겨놓고 점잖게만, 복잡한 대상 가지고 이렇게 얘기하는 방식으로 한다고 우리가 딱 이 문제를 다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제가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약속은 책임 있게, 앞으로 언제라도 책임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 박태견 씨는 노 대통령이 국민들을 모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직할권에 있는 정부와 열린우리당을 비난하는 동시에, 건설족 언론에 끌려다니는 국민을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 발언이 있기 직전 실시된 한 여론조사는 대통령의 국민 비난이 얼마나 국민 모독적 발언인가를 여
히 보여준다.

< 내일신문>의 25일 보도에 따르면, 이 신문이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를 통해 서울시민 6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고 1가구 2주택자에 대해 양도세를 중과하는 정책에 대해 서울시민의 62.3%가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찬성비율은 서울 강북(62.2%)과 강남(64.7%)로 도리어 강남에서 찬성 여론이 높았다. 작금의 부동산값 폭등이 한국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위기감의 결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이 매도하듯, 국민이 ‘세금 폭탄’ 운운하며 저항을 조직하려는 건설족 언론에 끌려다니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다.

노 대통령이 또하나 주목해야 되는 여론조사 내용은 ‘정부의 8.31 부동산 종합대책이 아파트값 안정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전체의 6할 이상이 세금 강화에 찬성하면서도 전체 응답자 중 34.2%만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답했고 61%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고 응답했다. 세금만을 갖고 부동산폭등을 잡으려는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의 표현인 것이다.

무슨 말인가? 노 대통령의 얘기를 제대로 듣기라도 했는가?

-(사후처방 식 뒷북행정으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올랐다는 지적에 대해) 뒷북행정, 힘들어간 행정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내성, 부동산정책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부동산 정책은 어렵습니다. 역대 정부가 계속해서 실패했습니다. 왜 실패했느냐 하면, 저항 때문입니다.

-부동산 가진 사람들이거나, 어쨌든 부동산 부자들 쪽의 여론이 그렇습니다. 원론에서, 총론에서는 다 찬성하다가 각론을 만들 때 ‘그것은 결국 서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세금폭탄이다, 또 그것은 시장원리에 위배된다, 그것은 헌법에 위배된다’…, 각종 각론적 반대를 들고 나와 가지고 주저 앉혀 버립니다.

-정부가 정책을 끄집어 낼 때, 총론 끄집어 낼 때는 전부 박수 소리가 나오니까 기분 좋아서 ‘되겠구나’ 자신을 가지고 부동산정책을 입안합니다. 하다가 나중에 하나씩 하나씩 가면서 그야말로 (일부 언론의) 폭탄을 맞아서, 지난 18일경부터 언론 보도들을 한번 보십시오.

-그러면 ‘아, 정부의 부동산정책 때문에 내 세금 올라가겠구나’ 관계없는 서민들도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고, ‘아, 저거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것 아니냐?’…. 국민 생활을 위해서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지 시장을 위해서 국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국민 경제가 먼저 있고, 그 국민 경제를 운용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시장이기 때문에 시장인 것이고, 시장에서 실패한 것은 국가가 정책으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해 주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 부동산이야말로 시장이 완전히 실패한 영역입니다.

어째서 이 얘기가 국민들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노 대통령은 그저 상식적인 얘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노 대통령의 이번 ’8.25 발언’이 앞으로 어떤 발전과정을 거쳐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는 좀더 냉정히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단 하나 분명한 사실은 함부로 국민을 매도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참여정부가 출범 당시 내세웠던 캐치프레이즈가 "국민이 대통령"임을 노 대통령이 잊지 않았다면 말이다.

노 대통령은 발언 내내 국민이 대통령임을 강조하며, 민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단, 노 대통령은 민심을 제대로 해석해야한다고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백성은 군주의 하늘이다, 또 백성은 바다요, 군주는 배라서 백성이 노하면 그 배를 뒤집어버린다’ 이것도 아마 그분 말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역사에서 백성은 항상 옳은 결론으로 걸어갔습니다. 옳은 결론으로 걸어갔는데, 실제에 있어서 현실에 있어서 단기적으로 보아서는 그것이 항상 옳은 쪽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백성이 옳은 방향으로 가는데 항상 수백 년이 걸립니다. 수백 년, 백성은 엉뚱한데 가가지고 엉뚱한데 힘 실어주고 봉사하고 이렇게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번 와서 딱 뒤집어놓고 ‘내가 옳았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심을 읽을 때 항상 중요하게 읽어야 됩니다.

박태견 씨는 부동산 정책 부분에서의 자신의 반대를 표출하기 위해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노 대통령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가 조중동과 다를게 무엇인가? 프레시안에 이런 수준의 칼럼이 실리다니 아주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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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의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

26 August 2005 by Joseph Jang


강정구 교수의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

2005년 7월 27일 강정구 교수는 데일리 서프라이즈‘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라는 컬럼을 실었다. 이 컬럼의 내용은 맥아더 동상 철거에 대한 두 집단의 충돌이 폭력과 이념 분쟁으로 일관하는 당시의 상황을 비판하고 맥아더 동상 철거에 대한 나름대로 합리적인 주장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는, 맥아더가 분단의 원인을 제공했으며, 전쟁의 주도자이며, 전시 민간인 학살의 주범이라는 근거를 들어, 맥아더가 생명의 은인이라거나 은혜를 갚아야한다는 논리를 비판하고 있다. 아래의 내용을 읽기 전에 강정구 교수의 컬럼 원문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이에 대한 보수언론과 보수단체의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조선일보의 사설 강 교수는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품에 안기라에서는 강정구 교수가 적화통일을 옹호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27일 ’6.25전쟁은 통일전쟁이자 內戰내전이었다’며 ‘이 집안싸움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 달 이내에 끝났을 것이고 살상과 파괴라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親盧친노 인터넷매체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전쟁 때문에 생명을 박탈당한 400만명 대부분에게 미국은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 원수’라며 ‘전쟁狂광 맥아더의 동상도 함께 역사 속으로 던져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01년 8-15 행사 때 북한의 김일성 生家생가 만경대를 방문해 방명록에 ‘만경대정신 계승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는 글을 남겼던 사람이다. 강 교수의 글 속엔 6-25전쟁에서 北북이 승리해 ‘赤化적화통일’이 성사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감정이 절절이 배 나온다.

조선일보 고문 김대중씨의 컬럼 ‘강정구 발언’이 의미하는 것에서는 한술 더 떠서 강정구 교수를 북의 지령을 받은 공작원 정도로 취급한다.

북(北)의 김정일 정권은 이제 대남(對南)전선에서 어떤 자신감을 얻은 듯 하다. 최근 한국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맥아더동상 철거운동과 동국대 강정구씨의 ‘통일전쟁’ 운운의 발언은 건국 이래 한국의 반공(反共)에 눌려 지하(地下)에 머물렀던 NL세력이 마침내 지상(地上)으로 표출하는 신호탄을 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다?

보수언론과 보수단체가 특히 비판하는 부분은 6.25전쟁이 통일전쟁이었다는 대목이다. ‘통일전쟁’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모호하다. 통일을 결과로 하는 전쟁을 의미하는가,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을 의미하는가. 하지만, 그 단어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 그들이 부여하는 의미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통일전쟁에 담겨진 2차적인 의미는 ‘통일을 할만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주체에 의한 통일을 결과 또는 목적으로 하는 전쟁’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아마도 강교수는 의도하지 않았을, 이렇게 쓸데없이 복잡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적어도 합리적인 논쟁을 위한 태도는 아니다. 솔직히, 이념 논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생각없이 그 단어만 사용하더라도 그들의 덫에 걸리는 것이다.

강교수가 의도한 그 단어의 진짜 의미가 무엇이든, 강교수의 얘기가 옳은가의 여부의 판단은 학자들에게 맡기고, 이른바 ‘통일전쟁’에 대한 보수진영의 태도를 살펴보자.

우선, 진중권의 창과 방패에 올라온 진중권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via 프레시안)

"한국 역사상 통일을 위해서 전쟁을 결심했던 사람으로 두 김씨가 있으니 김유신과 김일성이다."

6.25가 김유신의 삼국통일에 비견할 만한 통일전쟁이라는 얘기죠? 이 말은 누가 했을까요? 정답은, 월간조선 조갑제 전 사장입니다. 의 말입니다. 대표적 우익인사인 이 분은 김일성도 한 통일전쟁의 결심을, 왜 대한민국은 하지 못하냐고 질타하더군요. 이렇게 6.25가 통일전쟁이었다는 주장도, 조갑제씨처럼 전쟁을 선동하는 맥락에서 하면 괜찮고, 강정구씨처럼 역사학적 주장으로 제기하면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 그게 국보법이 지배하는 이상한 나라의 논리입니다.

진중권 씨가 언급한 월간조선 1994년 3월호 조갑제 씨의 논평 외에도 월간조선 2000년 6월호에 실린 허문도 전 통일원 장관의 시론에도 비슷한 얘기가 실려있다.

6-25는 우선 金日成의 통일전쟁이었다

한국 쪽에는 대응火器조차 없는 T34 전차를 앞세워,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시키는 미니 전격전을 벌일 만큼 그 준비는 좋았다. 그러나 金日成은 미국의 개입을 예상치 못했고, 그 미국은 중공의 개입을 예상치 못했다. 전쟁은 밑에다 불칼을 단 롤러로 남북 3000리를 1년 남짓한 사이에 한두 번 아래위로 밀어대는 기동전이었고, 휴전 얘기가 나오고서부터 2년간은 전선이 38선 주변에 교착된, 주로 陣地戰(진지전)이었다.

2001년 9월 28일 건군 53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연설에서 김대중 대통령도 비슷한 논지의 얘기를 했다가, 한나라당의 공격을 받은바 있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세 번의 통일 시도가 있었습니다. 신라의 통일과 고려의 통일, 이 두 번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인 6.25 사변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번 모두가 무력에 의한 통일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네 번째의 통일 시도는 결코 무력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야합니다. 지금은 남북이 엄청난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민족의 안전을 위해서나 장래의 번영을 위해서나 반드시 평화통일에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이 연설에 관한 중앙일보의 기사.

이에 대해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엄연히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에 의한 남침(南侵)을 ‘통일시도’ 로 평가하다니 대통령의 사상과 역사인식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고 비난했다. 權대변인은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호국영령들과 참전용사들이 공산주의자들의 ‘통일시도’ 를 막은 ‘반통일세력’ 이란 말인가" 라며 "金대통령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한 데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총무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발언"이라며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강력히 따질 것" 이라고 말했다. (from 중앙일보)

2000년과 2001년 사이에 화성인의 침공이라도 있었는가?

국가보안법에 의한 강정구 교수 사법처리

조선일보가 강정구 교수를 조선일보 입사시험에 낙방한 루저로 모는 찌질이짓을 하는 가운데, 경찰당국은 강정구 교수를 국가보안법으로 사법처리 방침을 발표했다.

급기야 보수 세력의 반발은 행동으로 나타났다. 자유개척청년단 등 23개 보수 시민단체 회원 820명이 최근 "강 교수의 글은 북한을 찬양-고무해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하고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내란을 선동한 것"이라며 서울중앙지검과 서울경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한 것.

고발장을 접수한 수사당국이 강 교수의 글 중 관심을 갖는 대목은 "6.25 전쟁은 후삼국 시대 견훤과 궁예, 왕건 등이 모두 삼한 통일의 대의를 위해 서로 전쟁 했듯이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한 부분이다.

수사 당국이 이 대목을 특별히 주목한 것은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를 금지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제7조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수사 당국인 서울경찰청은 지난 24일 사법처리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조사 초점은 국가보안법 7조(고무-찬양) 위반 여부"라고 밝혔다. (from 프레시안)

6.25가 통일전쟁이라는 말 중에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맥아더 동상 철거에 대한 강정구 교수의 모든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정구 교수의 논리는 그 논리가 반박됨으로써 힘을 잃은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세력들은 그 논리를 얘기한 사람, 바로 강정구 교수라는 사람 자체를 반박함으로써 그의 논리도 힘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다. 맥아더 동상 철거에 관한 합리적인 논의를 시작해보자고 했던 글이 보수언론에 의해 조그만 꼬투리를 잡혀서 국가보안법의 도마에까지 아직도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실소를 자아낼 뿐이다.

Update 2005/10/16: 강정구 교수에 대한 비판에 대한 강정구 교수의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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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주년 광복절 경축사

23 August 2005 by Joseph Jang

지난 광복절, 노무현 대통령의 경축사 전문입니다. 서두에서 일제 강점의 원인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지요. 일제 강점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당시의 제국주의 질서로 보고있으나, "지배세력의 완고한 기득권과 독선적인 사상체계, 부정부패와 목숨을 건 권력투쟁, 그리고 그로 인한 분열과 대립"을 또다른 원인으로 보고있습니다. 이어서, 현재의 역사, 정치, 경제-사회적 분열에 관한 우려를 보이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미 시행중인 과거사정리기본법, 선거제도 수정, 사회안전망과 교육정책, 그리고 국가 균형발전 정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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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책을 말하다 – 리영희의 對話

19 August 2005 by Joseph Jang

우연히 TV를 틀었다가, KBS의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리영희, 임헌영, 진중권 씨가 나온 걸 보았습니다. 리영희 선생의 책은 모두 품절이어서, "다시쓰는 한국현대사"와 같은 2차 자료나 신문 등의 인터뷰를 통해서만 접해왔으나, 그런 제한적인 매체로나마 접할 수 있었던 그 분의 생각들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프로그램 시작부터 보지 못해서 아쉽지만, 리영희 선생이 손을 떨면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는, 그 분의 강한 정신력을 느낄 수 있었고 감동적이기까지 했죠. 아직 다시보기로는 올라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참, 그리고, 전엔 품절이던 선생의 유명한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가 다시 인터넷 서점에 보이던데, 한권 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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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To Statement Considered Harmful

18 August 2005 by Joseph Jang

Go To Statement Considered Harmful by Edsger W. Dijkstra

Go To Statement Considered Harmful

the go to statement should be abolished from all "higher level" programming languages (i.e. everything except, perhaps, plain machine code)

Dijkstra의 "Go To Statement Considered Harmful"은 모든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go to 문이 사라져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Supposition

My second remark is that our intellectual powers are rather geared to master static relations and that our powers to visualize processes evolving in time are relatively poorly developed. For that reason we should do (as wise programmers aware of our limitations) our utmost to shorten the conceptual gap between the static program and the dynamic process, to make the correspondence between the program (spread out in text space) and the process (spread out in time) as trivial as possible.

그러한 주장에 대한 논지를 전개하기 전에 Dijkstra는 인간의 지적인 능력은 정적인 관계에 맞춰져있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프로세스들을 지각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직관을 가정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정적인 프로그램과 동적인 프로세스 간의 개념적인 괴리를 줄이고 프로그램과 프로세스의 상응성을 가능한한 단순하게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The Progress of a Process: Textual indices, Dynamic indices

이 후에 Dijkstra는 프로세스의 진행 정도 (the progress of a process) 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단순히 statement들의 연속 (pure concatenation) 이라고 볼 때, 프로세스의 진행 정도는 프로그램 상의 위치를 가리키는 textual index로 표현할 수 있다. 이는 conditional clauses나 alternative clauses, choice clauses, conditional expression을 도입하더라도 마찬가지다. procedure를 도입한다면 얘기가 약간 달라진다. procedure가 호출되었을 때, 프로세스의 진행 정도는 procedure를 호출한 부분의 textual index와 procedure 상의 texual index 로 표현되어야만 한다. 결국, procedure를 포함하는 프로그램의 프로세스의 진행 정도는 textual index의 집합, 즉 textual indices로 표현된다.

이런 얘기가 너무 추상적이라 이해하기가 힘들다면, 디버깅을 연상하면 되겠다. 어떤 시점의 프로세스의 진행 정도를 알 수 있다면, 그 프로그램의 상태도 유도할 수 있다. (다분히, formal verification의 냄새가…) 따라서, 프로세스의 진행을 중단시켰을 때, 프로그램의 상태, 즉 변수들의 값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 프로세스가 얼마나 진행되었는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한다. textual index나 textual indices는 우리가 디버깅할 때 흔히 보는 line number와 stack trace 정도로 보면 되겠다.

여기에 repetition clauses가 추가되면 좀 더 복잡해진다. repetition clauses 내에서는 프로그램 상의 위치(textual index)만으로 프로세스의 진행 정도를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몇번이나 반복했는가의 정보를 포함하는 dynamic index가 필요하다.

"The unbridled use of the go to statement"

The unbridled use of the go to statement has an immediate consequence that it becomes terribly hard to find a meaningful set of coordinates in which to describe the process progress.

위에서 프로세스의 진행 정도는 textual indices와 dynamic indices의 집합으로 표현할 수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go to 문이 프로그램에 추가된다면 어떨까? Dijkstra는 그 시점까지 수행된 statement의 수를 나타내는 counter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counter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디버깅의 예를 연상해보라. 프로세스 중단 시점까지 수행된 statement의 수가 주어졌을 때,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램을 가지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디버깅을 해낼 수 있을까? 아니, 프로그래머에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procedure call 시의 textual index를 유지하는 것처럼, go to 문이 수행된 지점의 textual index를 유지한다면 어떨까? go to를 너무 난잡하게 쓰지 (unbridled use) 않는 한, 프로세스의 진행 정도를 나타내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근거는 conditional/choice/repetition clauses이나 procedure call도 동작 자체는 go to 와 같이 프로그램 상에서의 jump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만, conditional/choice clauses는 그러한 jump를 프로그램의 구조를 통해서 알려주기 때문에 추가적인 textual index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또한 기존의 textual index 만으로도 jump의 의미를 프로그래머에게 명확하게 전달해준다. repetition clauses의 경우에도 jump는 반복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담고 있다. procedure의 경우도 어떤 code block으로 jump 했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단순한 jump 모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conditional/choice/repetition clauses와 procedure는 jump의 동작을 모델화하고 의미를 부여한 go to문인 것이다.

결국, textual/dynamic indices와 같은 coordinates가 프로그래머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 (meaningful) 의 문제다. go to 문을 오용할 때, 그러한 coordinates가 표현하려는 것이 프로그래머에게 의미가 없거나 해석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The go to statement as it stands is just too primitive"

The go to statement as it stands is just too primitive; it is too much an invitation to make a mess of one’s program. One can regard and appreciate the clauses considered as bridling its use. I do not claim that the clauses mentioned are exhaustive in the sense that they will satisfy all needs, but whatever clauses are suggested (e.g. abortion clauses) they should satisfy the requirement that a programmer independent coordinate system can be maintained to describe the process in a helpful and manageable way.

위의 인용이 이 paper의 결론에 해당한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conditional/choice/repetition clauses와 procedure는 go to라는 primitive를 의미가 있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좀 더 높은 수준의 장치인 것이다. 분명히 go to 문만을 쓰더라도 의미가 있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때로는 의미가 있는 방식으로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가 제대로 해석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Dijkstra는 이러한 clauses들이 go to 문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Donald E. Knuth의 Structured Programming with go to Statements나 David R. Tribble의 Go To Statement Considered Harmful: A Retrospective 또는 Linux kernel에서는 go to 문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Dijkstra가 제시한 programmer independent coordinate system이 go to의 harmfulness를 방지하기 위한 좋은 척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coordinates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go to의 harmfulness를 방지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Dijkstra가 얘기하는대로 coordinates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coordinates는 충분히 meaningful해야한다. 내 생각에는, 얼마나 meaningful한가와
은 척도에는 프로그래머들의 사고 체계가 관여될 수 밖에 없고, 결국은 문화와 같이 주관적인 성향을 가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repetition clauses를 사용할 때, 프로세스의 진행 정도를 dynamic indices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repetition이라는 개념 또는 induction에 익숙하기 때문이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dynamic indices 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해하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The Myth: Never Use go to Statements

Dijkstra의 이 paper가 끼친 가장 나쁜 영향은 아무래도 절대로, 절대로 go to를 써서는 안된다는 신앙일 것이다.

No one quarrels with using gotos to emulate structured constructs in languages that don’t support structured control constructs directly. The debate is about languages that support structured constructs, in which gotos are theoretically not needed. Here’s a summary of the points on each side. [16.1 Using gotos]

Steve McConnell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어디서든 go to를 절대로 써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go to가 사용되는 예로 가장 흔한 것은 아무래도 error handling이다. C와 같이 exception을 지원하지 않는 언어에서 error handling을 위해서 go to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idiom이다. error handling을 주 logic과 분리하는 것이 가독성을 개선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o to문의 사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단지 go to가 거기에 있다는 이유로 그런 프로그램을 나쁜 프로그램으로 생각한다. "Considered Harmful" Essays Considered Harmful의 가장 가까운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디에도 통용되는 말이겠지만, David R. Tribble은 Go To Statement Considered Harmful:
A Retrospective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내리고 있다.

Dijkstra’s belief that unstructured goto statements are detrimental to good programming is still true. A properly designed language should provide flow control constructs that are powerful enough to deal with almost any programming problem. By the same token, programmers who must use languages that do not provide sufficiently flexible flow control statements should exercise restraint when using unstructured alternatives. This is the Tao of goto: knowing when to use it for good and when not to use it for evil.

go to 문의 사용에 대한 좀 더 실용적이고 자세한 가이드라인은 Steve McConnellCode Complete16.1 Using gotos절의 마지막에서 제시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읽어보기 바란다.

References

Comments | Categories: Software Development

Tejun Heo

16 August 2005 by Joseph Jang

KernelTrap 기사를 보다가 Serial ATA (SATA) Linux software status report에서 태준옹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ChangeLog를 살피다보면 간간이 볼 수 있긴 했지만요. 배틀필드 2 한국 서버의 tejun과 동일 인물이라죠.

Tejun Heo has contributed error handling improvements, and assisted in various other areas.

태준옹으로 말하자면, 참으로 멋진 사람입니다. 그는 여러가지 면에서 저의 선생이기도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장점을 들자면 아무래도 합리적이면서도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 점이랄까요. 논리에 너무 빠져들다보면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극단에 빠지기가 쉬운데, 태준옹은 제가 그럴 때마다 항상 그런 것을 바로 잡아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믿지 않는 것과 손쉽게 타협하지는 않습니다. (균형 감각이라는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언급합니다.)

한번은 제가 다니던 회사에 형을 추천한 적이 있는데, 면접에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얘기가 있었다죠.

면접관: 당신은 사랑과 우정과 일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엇을?

tejun: (쩔쩔매며..) 저는.. 그런 질문 되게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딴 질문을..

결과는? 떨어졌습니다. 물론, 저런 대답을 했다고해서 떨어진 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요. 이유가 무엇이었든간에 태준옹과 같은 인재가 떨어진 것은 매우 아쉬웠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에 Linux 관련 모 외국 기업으로부터 job offer를 받으셨다죠. 이 자리를 빌어서 한번 더 축하드려요.

Comments | Categories: Software Development

MT-Blacklist

14 August 2005 by Joseph Jang

Last Mind에 Comment Spam이 더이상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져서, MT-Blacklist 플러그인을 설치했습니다. MT-Blacklist 플러그인은 마스터 블랙리스트를 자동으로 업데이트해서, 새로 들어오는 comment나 trackback을 필터링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MovableType의 Spam에 대한 대책들은 다음 글들이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만약, MT-Blacklist가 잘 통하지 않으면, 이 글들이 제안하는 다른 방법들도 사용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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